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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플라톤

플라톤의 국가론(The Republic)을 읽고.

학문적으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개인적으로 매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팀을 꾸리고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국가론은 내게 이러한 문제가 어떤 것이 원인인지 그리고 나아가서 문제에  대한 해결해 나갈 실마리를 제시해 주었다.

 

[첫 번째: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하는가]

소프트웨어학은 컴퓨터 공학의 연구 주제인 하드웨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중 후자를 조금 더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분리된 학문이다. 그리고 컴퓨터공학은 1944년에 전자기학과 수학의 논리학이 합쳐져 만들어진 인간의 발명품인 전자계산기에 시초를 두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수학, 기계공학, 언어학 등의 다양한 학문과 함께 발전하며 지금의 거대한 형태에 이르렀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는 응용학문 성격과 순수학문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플라톤은 6권에서 철인이 되기 위해서 수단으로써 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좋은 동굴 밖의 태양의 비유를 들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성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불변의 진리(대표적으로 수학)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태양과 같은좋음이 새로운 지식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존재와 본질의 창조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학에도 동굴의 비유에서 그림자같이 빛에 의해 보이는 것들(API, 라이브러리)태양과같이 불변하는 것들(수학, 알고리즘, 아키텍처)이 있다. 학교 커리큘럼에 있던 과목들은 대부분 태양에 가까운 것들이었는데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수학문을 중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고 이 분야에서 철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림자보다는 프로그래밍 세계의 이데아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공부도 단순히 스킬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동작 원리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원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팀을 꾸릴 것인가]

 소프트웨어 특성상 결과물의 크기가 개인 혼자 만으로는 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팀 단위로 진행된다. 그리고 팀이 구성되면 팀원에게는 각자 자신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가장 호흡도 잘 맞고 결과물이 좋았던 프로젝트는 팀원들 개개인이 잘하는 것이 뚜렷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우리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 팀장을 맡았을 때였다. 반면 최악의 결과를 냈던 때는 한 명이 팀원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독재하는 마치 참주정(tyrannia)과 같은 구성원이 있었을 때였다. 팀을 하나의 자그마한 국가로, 팀원을 그 국가의 국민으로 보았을 때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 국가 “칼리폴리스”“칼리 폴리스”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뛰어난 소수의 철인의 통치 아래 국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훈련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이란 것이 독재의 성격이 강해 강한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국가가 소규모이고 철인이 잘 선발된다는 가정이 있다면 분명 민주주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는 정치 체제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제시한 이유는 개인이 따라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윤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학계의 통념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실제 이상국가가 실현 가능한지를 바라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철인정치가 역사적으로 많은 독재정치의 명분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몇 가지 반론을 가지고 있다. 우선 통치자인 철인이 부패하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히틀러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철인은 시대가 지나면 지날 수록 알아야 할 것과 신경 쓸 것들이 많아져서 결국 철인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계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면, 히틀러의 경우는 플라톤이 제시한 철인의 자질을 함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철인정치라 할 수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히틀러는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 수학, 체육, 변증술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총통이 된 선발 절차도 플라톤이 제시한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톤은 이상 국가 칼리 폴리스의 크기를 소수의 철인이 다스릴 수 있는 도시국가의 정도의 크기라고 분명히 언급하였기 때문에 두 번째 반론에 대한 재 반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현대의 플라톤의 칼리폴리스와 같은 이상 국가와 가장 유사한 나라는 싱가포르이다.. 백 프로는 아니지만 보긴 어렵지만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가 서울 정도의 크기인 도시국가라는 점 그리고 아시아 최고 선진국 부국에 손꼽힌다는 점을 보면 대표적인 싱가포르는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 국가에 가깝다. 신기한 것은 싱가폴을 건국했던 전 총리리콴유2015년 죽기 직전까지 거의 혼자서 독재 아닌 정치를 했고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가족들이 뒤를 물려받아 통치하고 있는데도 국민들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라도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가정했던 올바른 철인과 작은 소규모 도시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히 서양의 철학, 윤리학, 정치학의 기초를 세운 책이라 할 만했다. 대화의 참여자로 등장하는 여럿 소피스트의 주장들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다 읽고 나니 어떤 것이 올바름인가에 대한 수 많은 질문들 그리고 몇 가지 해답들이 머리에 남았다.